2015년 12월 25일 금요일

기득권 추종

너도나도 기득권에 들어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기존의 기득권 계층도 자신의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에서 기득권이라 불리는 계층은 사실 부와 명예를 갖추고 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하고, 존경을 받기도 한다. 부와 명예를 좇는 노력은 자본주의 테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누구도 그러한 부분을 두고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이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법을 위반하고, 사회 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려거나 부를 축적하려 한다면, 이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이러한 기득권을 썩었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비난한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이 비난과 함께 덧붙이는 말이 있다. '기득권의 더러운 모습이 싫다면, 네가 악착같이 기득권이 되어 바꿔라.'라는 말이다. 물론 내가 기득권에 되어 바꾸면 된다. 매우 현실적이지만 정말 어려운 길이기도 하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사람은 자신의 위치에 따라 주변의 현상을 다르게 해석하는 매우 놀라운 능력이 있다. 나의 처지가 바뀌면, 쉽게 과거 내가 가졌던 입장으로 세상을 해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난 TOP-DOWN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현 사회의 구조에서, DOWN-TOP(BOTTOM-UP)의 구조로 판을 새로 짜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물길을 따라 움직일 생각만 하는데,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나면 물길이 바뀌듯, 많은 사람이 동시에 노력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판을 새로 짤 수 있다. 새로운 판에서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사회가 언제 올 수 있을까. 

내가 기득권이 썩었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기득권에 들어서 바꾸라고 한다. 기득권을 썩었다고 인정은 하지만 기득권을 추종하고 있는 모습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라는 말이 아니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나는 기득권이 되려는 마음을 버렸다. 아니 그렇게 되는 것을 피하려 노력할 것이다. 기득권 추종자가 되어 애초부터 앞뒤가 안 맞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열정과 욕심

열정은 타고나면 멋있지만,
욕심은 타고나면 초라하다.

열정은 넘칠수록 주변에 사람이 꼬이지만,
욕심은 넘칠수록 주변에 사람이 사라진다.

열정은 담백한 사람을 만들지만,
욕심은 기름진 사람을 만든다.

열정은 마음에 담고, 욕심은 버리는 훈련을 하자.

넌 너무 이상적이야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현실과 너무 떨어져 있다.', '너무 이상적이다.'와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나의 말이 너무 급진적일 때도 있고, 간혹 논리에 어긋나기도 하며, 나도 의견을 나누는 활동을 많이 안 해놔서 나의 주장에 오류가 있는 것을 억지로 밀어붙여 상대의 의견을 꺾어보려고 악을 쓰는 등 조금 저질스럽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너무 이상적이란 말을 듣고 나면, 조금 힘이 빠지고 내가 너무 잘못 생각하는 건가 싶어 내가 주장하던 것을 며칠 동안 하나씩 되짚어 보곤 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반복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상적이란 말은 나의 의견이 매우 좋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앞으로 너무 이상적이란 평가를 받았던 나의 생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넌 너무 이상적이야.'라는 말을 듣고 있다면, 상대에게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자. '넌 그 이상을 받아들이고 만들어갈 용기가 없기 때문이야.'라고...

2015년 12월 19일 토요일

대학교의 역할은 축소될 것이다.

대학교의 역할이 축소될 것이라 생각하는 이유



  1. 이미 한국에서는 수요보다 공급이 월등하게 앞서고 있다.
    대학교 진학률이 한때, 75%를 넘었다가, 최근에는 70%대로 줄어들었다.(2014년)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영국의 대학 진학률은 47%, 미국은 43%, 독일은 28%다.(2011년 기준) 이 국가들은 국민을 대학교로 한국만큼 많이 보내지 않고도, 국민이 잘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대학교육을 받지 않는 사람이 비교적 많아도 돈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업들이 많다는 의미이고, 뒤집어 말하자면 돈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고학력자가 기업에 필요한 것은 아니란 의미다.
  2. 정보의 시대에 능동적인 학습자가 늘어나고 있다.
    굳이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의지만 있다면 책과 인터넷을 통해서 공부할 수 있다. 물론 대학교가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교육환경은 질 높은 정보를 제공하며, 공부하기에 좋은 커뮤니티 형성을 돕기도 한다. 하지만 대학교가 왜 생겼는지 생각해보면, 대학이 사라질 환경이 조성됐음을 알 수 있다. 대학교는 애초에 지식인들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후학을 만들기 위해 조성됐다. 지금의 시대는 능동적인 학습자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온라인에서 지식의 공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미 대학에서 주는 지식 공유 환경보다 때론 더 월등하기까지 하다. 대학이 특별히 변하지 않는 이상 대학의 힘은 약해질 것이다.
  3.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영어 실력을 갖춘 사람이 적었다. 그래서 영어를 잘한다는 것만으로도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 공유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인 영어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생활과 새로운 세대에 깊숙하게 침투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제는 영어에 익숙해졌고, 국외에 있는 커뮤니티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새로 다가오는 세대는 영어를 더욱 잘하게 될 것이며, 대학에서보다 더 활발하고 창의적인 자기발전 활동을 할 수 있다.

    영어만 알면, 무료로 제공되는 질 높은 대학강의를 무료로 접할 수 있다.

  4. 새로운 세대는 학교 성적이 사회에서의 성공의 열쇠로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 졸업장이 사회의 성공 요인으로 생각되지 않기에 앞서 학교에서 평가받은 성적이 성공의 시작이 아니라는 것을 다음 세대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이미 수많은 고학력자가 실패를 맛보고 있는 것을 다음 세대들이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와 동시에 대학과 정부는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뒤늦게 여러 조치를 할 것이다. 대학이 이미 상업화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개혁에 성공한다면, 대학의 위상은 다시 높아지겠지만, 나는 아직 비관적이다.

생각의 끝까지 달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어떤 사회 현상이나 자연 현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굽히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이때부터 논쟁이 생기고, 간혹 서로의 감정이 상하고 만다. 이런 것은 대화가 건설적으로 가지 못하는 경우다.

한국의 많은 사람이 이런 논쟁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정말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거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서 논쟁이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미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은 매우 빠르게 공유된다. 예를 들자면, 시험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값싼 물건을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세금의 징수를 피할 수 있을지 등이다. 예로 제시한 것들은 능동적인 구성원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능동적인 것일 뿐이다. 그 환경을 바꾸려는 생각이나 노력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이 주어진 환경에서 머무르는 이유는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사회에 잘 적응할지에 대한 고민을 어릴 때부터 훈련받는다. 변화를 앞장서기보다 변화에 발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가르친다. 마치 컵을 뒤집어 벼룩을 장시간 넣어두면, 벼룩이 컵 높이까지만 뛸 수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자기 생각의 끝까지 달려가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며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훈련과 여러 사람과 생각을 합쳐서 생각의 공간을 확장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책을 많이 읽고,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하고, 함께 생각을 나누는 것을 어릴 때부터 훈련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에 나와서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