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0일 토요일

대화하고 싶다.

평소 스스로 말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아마 과거에는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말수가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말을 많이 하는 이유는 즐겁기 때문이다. 사람과 대화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활동이 나는 즐겁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말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나 혼자만 말을 많이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물론 나와 대화를 하기 싫어서 그런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어쩌면 나의 세대(80년 중반 출생)들이 개인적인 활동을 좋아하고, 사교적이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밥을 먹거나 쉬는 시간에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그렇다.

며칠 전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틀었다. 아웃오브아프리카. 내가 탄자니아에서 2년을 머물렀고, 지금 다시 콩고라는 나라에 와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 영화에 애착이 간다. 근데, 내가 '대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새롭게 와 닿는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이 케냐에 도착해서 자신의 집에 머무르던 중에 안면이 있는 남자 두 명과 저녁 약속을 한다. 남자 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묻기를 잘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 노래를 할 수 있느냐 이런 질문을 한다. 여주인공은 이야기를 좀 할 수 있다고 말했고, 저녁 식사가 끝나자 남주인공이 적당히 이야기 배경을 만들어 주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고 박수를 치고 이야기에 대해 또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영화의 배경은 아프리카 케냐 1900년대 초기였으니, 전기, 티비도 없던 그런 시절에 사람들은 저런 활동을 하면서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의 현대인들에 비해 매우 생산적이고, 사교적이고, 정신건강에도 좋은 활동임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도 1900년대 초와 비슷한 환경에 2년 정도 살았다. 탄자니아 시골에서 중학교 교사로서 살았는데, 그곳은 전기도 물도 없는 지역이었으니 불편함은 많았지만, 촛불이나 전등 하나를 켜놓고 밤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와 이야기하기 위해 저녁에 나의 방 문을 두드리던 동료 선생님들이 기억난다. 그것은 어떤 열정을 가진 움직임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생활의 일부였고 자연스런 문화였다는 사실을 다시 발견하니 새삼 내가 살던 탄자니아의 시골 동네가 그리워진다. 사람 냄새가 물신 났던 그곳.

다시 이 글의 처음 내가 썼던 이야기를 이어 가보자면, 지금의 세대들은 인간 냄새를 너무 숨기려고 한다. 물론 나도 포함이다. 정돈된 머리칼을 선호하고, 단정한 옷을 좋아한다. 물론 이런 선호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단정하지 못한 옷과 정돈되지 못한 머리칼, 사람의 치부 등을 보고 거부감을 겉으로 보이는 것은 남에게도 나쁜 기운을 전하며, 스스로가 인간임을 부정하는 태도는 아닐까 생각해봤다. 나는 회사 창고에서 오늘도 무거운 짐을 나르는 현지직원과 살을 부대끼며 일하고 있다. 매일같이 다른 땀 냄새가 난다. 나는 이 냄새를 좋아한다기보단 피하려 하지는 않는다. 아마 지쳐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밥을 겨우 먹고 잤을 것이고, 이부자리가 우리의 기준에서 깨끗했을 리 없었을 것이고, 씻을 물 역시 부족했을 것이다. 난 그런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감히 그들의 냄새를 피할 수 없어진다. 오늘같이 이런 글을 쓰는 날이면, 그들이 존경스러워지니까.

2016년 6월 20일 월요일

내 마음속 스프링

마음 속에는 아주 강한 스프링이 있다.

편협함이라는 스프링

나의 부끄러웠던 과거의 행적들을 떠올리고, 서로 미워했던 시간을 돌아보면 나의 편협함에 위장이 다 쓰려온다.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속에 서있기로 다짐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나는 알 수 있다. 편협함이란 스프링은 좀 처럼 탄성을 잃지 않았음을.

편협은 사람의 이미지를 망치고 서로의 기분도 망치고 나의 건강도 망친다. 백 번 생각해봐도 좋을 것이 전혀 없다. 다시 한 번 편협함이란 스프링을 억지로 늘려본다.

2016년 5월 19일 목요일

You will speak what you want to say.

It has been 3 weeks in DR Congo. There are a few local languages natives use. One of the most popular languages is French. But I don't speak that. In my company's residence, we have a mom who cooks and cleans for us. She can speak Swahili language so I could feel at home. But when I need to communicate with native coworkers, I feel difficulty doing my tasks of course they also do. I thought it is really a big problem for me to work at my company but now I have started speaking broken French and Lingala to get me through it. I could not express what I wanted to say in French or Lingala even thought I do not know where and how did I learn, I am speaking some sound maybe like French and surprisingly they are understanding my sound, a little more than before.

2016년 4월 30일 토요일

My feeling like the feeling about DR Congo

I came to DR Congo for job yesterday. In the airport there were many staff of immigration office. They were talking each other with Swahili language. So I thought I would not need to learn French and my speaking skills of Swahili language is going to be enough to live here. But after getting out the airport I could hear various languages. French is a national language in DRC and there are several dominant local languages. It is strange to me because in Tanzania, Swahili language was mainly used over all areas of TZ. Even though there were a lot of tribe languages, it was not easy to hear those.








These are what I saw when I was going to my company. It is worse than what I watched in TZ four years ago. They are under the bad traffic conditions. In the first picture, the car in navy looks like is going to loose its front wheels soon. It just seems they haven't arranged traffic laws well.

Another weird feeling
When I was a volunteer in TZ, I was usually in the bad cars like in the above pictures. But I am in a nice car with an air conditioner as being with a profitable job in DR Congo. Now I can notice I am here for money not for giving helps.

읽고 또 읽어보자.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으며,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한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이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산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른다.
갈 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 누구도 모른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또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이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거칠게 말할수록 거칠어지고,
음란하게 말할수록 음란해지며,
사납게 말할수록 사나워진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것은 내 자신에 달려 있다
- 백범 김구 -

2016년 3월 28일 월요일

전통이라는 불리는 대학교 폭력에 대한 해결책은 없을까?

며칠 전 동아대학교 '오물 막걸리 샤워'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전통이라고 부르며 이어지는 악습이다.

그리고 이런 사건 말고도 오티행사 때, 성추행 사건부터 다양한 잡음이 매년 반복된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런 폭력의 특징은 선배들의 교육으로 시작된다. 같이 당하면서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한 동질감을 좋은 것으로 포장해 받아들이도록 교묘하게 분위기를 만들어나간다. 만약 누군가 하기 싫어서 '전 오늘 몸이 안 좋아서 못하겠어요'라고 말하고 몇 학생이 빠지면, 그들은 배신자가 되는 분위기 속에 이러한 행사가 진행된다. 적극적으로 반항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악습은 전통으로 탈바꿈한다. 

만약 많은 신입생이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선다면 어떨까. 이런 행사가 진행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큰 싸움이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악습이 인권유린이며 폭력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신입생이라면, 그 싸움의 가치를 알고 싸움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교육으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의무교육과정에서 인권교육을 매년 빼놓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인권이 무시되고 있는 것인지, 폭력 속에 있는지 강하게 인식할 수 있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문제 제기가 단순한 반항이나 싸움의 시작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시발점임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이런 악습에 반대하는 행동이 시작될 것이며 몇 해 지나지 않아 이런 악습을 사라질 것이다. 

국·영·수 위주의 입시를 위한 공부는 사람이 인간답게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것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 다음 교육과정을 효율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한 것이다. 교육과정의 끝에는 직장생활, 사회생활, 결혼생활, 자식 교육 등이 기다리고 있다. 긴 인생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 습득에 집중하기보다는 외부의 정보를 바르게 인식하는 연습, 문제를 제기하는 연습, 문제를 해결하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런 대학교의 악습이 사라질 것이며, 갑질, 데이트 폭력, 회사에서발생할 수 있는 노사불평등 등에서 합리적이지 못한 문화들이 사라지거나 개선될 것으로 믿는다.

2016년 1월 12일 화요일

위에서 아래로, 아래서 위로

이전 글: 기득권 추종

앞서 '기득권 추종'이란 글에서 TOP-DOWN이란 사회 구조에 대해 언급했다. 법은 대표적인 탑다운 시스템이다. 법이 정해지면, 모든 사람은 그 법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 탑다운 시스템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이런 시스템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어릴 때, 친구들과 어떤 놀이를 하다 보면, 놀이의 규칙이 놀이 환경에 따라 간혹 바뀐다. 그런데 간혹 이런 친구들이 있다. 규칙을 자신이 정하고 그 규칙을 지키지 못했을 때, 그에 따르는 벌칙을 수용하기보다 다시 그 규칙을 자신에게 맞게 고치려고 한다. 이게 어릴 때, 놀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도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

필요에 따라 규칙을 바꾸는 것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입법하는 사람들이 자신 혹은 자신과 관련 있는 사람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시로 그 규칙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입법권이 없는 일반인은 그들이 바꾼 규칙을 좋든 싫든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우리가 어릴 때, 친구들과 놀이를 하면서 이미 이것이 얼마나 정당하지 못한 것인지 학습했다. 보통 놀이에서 이런 불합리한 점이 발생하면, 일부 친구들은 놀이를 더는 하지 않겠다며 항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합리한 행동이 사회에서 일어나면, 많은 사람이 항의하지 않고 새로운 규칙에 순응한다. 그 이유는 이 사회의 구조가 매우 경직된 위에서 아래로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사상을 기반으로 살고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선거라는 것을 하는데, 이게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행위 중 하나다. 우리는 입법을 할 사람(국회의원), 행정을 할 사람(대통령, 지방자치단체장 등) 등을 투표로 뽑는다. 투표는 그들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긴다는 일종의 계약 같은 것이다. 국민의 모든 사람이 입법과 행정운영에 참여하기엔 물리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투표라는 방법이 생겨난 것이다. 투표는 그 방향이 아래서 위로 향하며, 선거 이후 당선자들이 위에서 아래로 하는 여러 행동의 합리성을 부여한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들이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에게 굽신거리는 이유다.

이런 시스템의 약점은 한 번 뽑아 놓으면, 그들의 임기가 일정 기간 유지된다는 것에 있다. 그들이 국민의 의견과 방향을 달리해도 사실상 뾰족한 수가 없다. 물론 시민들이 항의와 적절한 절차를 밟음으로써 임기를 다 못 채우게 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쉽지 않다. 말로는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실제 구조는 민주적이지 않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을 분명하게 고쳐야 할 필요성이 있다.


최근에 과학기술의 발전과 IT 기술의 발전이 이러한 기득권의 횡포를 잠재울만한 보완책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입법을 국민이 모두 참여할 방법이 생긴 것이다. 이미 인터넷을 거의 모든 국민이 사용한다고 볼 수 있으며, 스마트폰 사용자도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금은 약 70%가 스마트폰 사용자다. 최근 인체 인식기술의 발전하고 있어, 여러 발전된 환경을 기반으로 온라인으로 투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면, 입법을 국민이 할 수 있게 된다사실 금융거래 같은 민감한 부분이 우리 생활에 정착한 지 오래다) 물론 부정을 저지르기 힘든 시스템을 구축하여 모든 사람이 입법에 참여한다고 해서 결과가 항상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의사결정의 과정이 바람직하다면, 그 결과도 국민이 받아들이기 수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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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ommunity.klaw.go.kr/
국민참여입법시스템이란 것이 있다.
그런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과연 국민의 의견을 수렴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국민토론이라는 게시판에는 2015년 한 해 동안 일곱 건의 의견이 올라와 있으며, 찬성 및 반대에 모두 '0' 이란 숫자가 박혀있다. 정부가 얼마나 의지가 없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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