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스스로 말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아마 과거에는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말수가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말을 많이 하는 이유는 즐겁기 때문이다. 사람과 대화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활동이 나는 즐겁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말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나 혼자만 말을 많이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물론 나와 대화를 하기 싫어서 그런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어쩌면 나의 세대(80년 중반 출생)들이 개인적인 활동을 좋아하고, 사교적이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밥을 먹거나 쉬는 시간에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그렇다.
며칠 전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틀었다. 아웃오브아프리카. 내가 탄자니아에서 2년을 머물렀고, 지금 다시 콩고라는 나라에 와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 영화에 애착이 간다. 근데, 내가 '대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새롭게 와 닿는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이 케냐에 도착해서 자신의 집에 머무르던 중에 안면이 있는 남자 두 명과 저녁 약속을 한다. 남자 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묻기를 잘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 노래를 할 수 있느냐 이런 질문을 한다. 여주인공은 이야기를 좀 할 수 있다고 말했고, 저녁 식사가 끝나자 남주인공이 적당히 이야기 배경을 만들어 주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고 박수를 치고 이야기에 대해 또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영화의 배경은 아프리카 케냐 1900년대 초기였으니, 전기, 티비도 없던 그런 시절에 사람들은 저런 활동을 하면서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의 현대인들에 비해 매우 생산적이고, 사교적이고, 정신건강에도 좋은 활동임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도 1900년대 초와 비슷한 환경에 2년 정도 살았다. 탄자니아 시골에서 중학교 교사로서 살았는데, 그곳은 전기도 물도 없는 지역이었으니 불편함은 많았지만, 촛불이나 전등 하나를 켜놓고 밤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와 이야기하기 위해 저녁에 나의 방 문을 두드리던 동료 선생님들이 기억난다. 그것은 어떤 열정을 가진 움직임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생활의 일부였고 자연스런 문화였다는 사실을 다시 발견하니 새삼 내가 살던 탄자니아의 시골 동네가 그리워진다. 사람 냄새가 물신 났던 그곳.
다시 이 글의 처음 내가 썼던 이야기를 이어 가보자면, 지금의 세대들은 인간 냄새를 너무 숨기려고 한다. 물론 나도 포함이다. 정돈된 머리칼을 선호하고, 단정한 옷을 좋아한다. 물론 이런 선호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단정하지 못한 옷과 정돈되지 못한 머리칼, 사람의 치부 등을 보고 거부감을 겉으로 보이는 것은 남에게도 나쁜 기운을 전하며, 스스로가 인간임을 부정하는 태도는 아닐까 생각해봤다. 나는 회사 창고에서 오늘도 무거운 짐을 나르는 현지직원과 살을 부대끼며 일하고 있다. 매일같이 다른 땀 냄새가 난다. 나는 이 냄새를 좋아한다기보단 피하려 하지는 않는다. 아마 지쳐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밥을 겨우 먹고 잤을 것이고, 이부자리가 우리의 기준에서 깨끗했을 리 없었을 것이고, 씻을 물 역시 부족했을 것이다. 난 그런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감히 그들의 냄새를 피할 수 없어진다. 오늘같이 이런 글을 쓰는 날이면, 그들이 존경스러워지니까.
며칠 전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틀었다. 아웃오브아프리카. 내가 탄자니아에서 2년을 머물렀고, 지금 다시 콩고라는 나라에 와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 영화에 애착이 간다. 근데, 내가 '대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새롭게 와 닿는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이 케냐에 도착해서 자신의 집에 머무르던 중에 안면이 있는 남자 두 명과 저녁 약속을 한다. 남자 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묻기를 잘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 노래를 할 수 있느냐 이런 질문을 한다. 여주인공은 이야기를 좀 할 수 있다고 말했고, 저녁 식사가 끝나자 남주인공이 적당히 이야기 배경을 만들어 주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고 박수를 치고 이야기에 대해 또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영화의 배경은 아프리카 케냐 1900년대 초기였으니, 전기, 티비도 없던 그런 시절에 사람들은 저런 활동을 하면서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의 현대인들에 비해 매우 생산적이고, 사교적이고, 정신건강에도 좋은 활동임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도 1900년대 초와 비슷한 환경에 2년 정도 살았다. 탄자니아 시골에서 중학교 교사로서 살았는데, 그곳은 전기도 물도 없는 지역이었으니 불편함은 많았지만, 촛불이나 전등 하나를 켜놓고 밤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와 이야기하기 위해 저녁에 나의 방 문을 두드리던 동료 선생님들이 기억난다. 그것은 어떤 열정을 가진 움직임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생활의 일부였고 자연스런 문화였다는 사실을 다시 발견하니 새삼 내가 살던 탄자니아의 시골 동네가 그리워진다. 사람 냄새가 물신 났던 그곳.
다시 이 글의 처음 내가 썼던 이야기를 이어 가보자면, 지금의 세대들은 인간 냄새를 너무 숨기려고 한다. 물론 나도 포함이다. 정돈된 머리칼을 선호하고, 단정한 옷을 좋아한다. 물론 이런 선호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단정하지 못한 옷과 정돈되지 못한 머리칼, 사람의 치부 등을 보고 거부감을 겉으로 보이는 것은 남에게도 나쁜 기운을 전하며, 스스로가 인간임을 부정하는 태도는 아닐까 생각해봤다. 나는 회사 창고에서 오늘도 무거운 짐을 나르는 현지직원과 살을 부대끼며 일하고 있다. 매일같이 다른 땀 냄새가 난다. 나는 이 냄새를 좋아한다기보단 피하려 하지는 않는다. 아마 지쳐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밥을 겨우 먹고 잤을 것이고, 이부자리가 우리의 기준에서 깨끗했을 리 없었을 것이고, 씻을 물 역시 부족했을 것이다. 난 그런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감히 그들의 냄새를 피할 수 없어진다. 오늘같이 이런 글을 쓰는 날이면, 그들이 존경스러워지니까.



